시공사

한 남자 아이가 길에서 큼지막한 알을 줍는다. 알에서 깨어난 것은 닭도 아니고, 오리도 아니고, 어쨌든 농가에서 익숙한 날짐승은 아니다. 굉장히 못생기기는 했지만, 아무리 뜯어 봐도 못났다는 이유만으로 만에 하나 백조가 될 성싶지도 않다. 생긴 것만큼 밉살스러운 짓을 골라 하던 그 새는 알고 보니 펠리컨. 드디어 “아이덴티티”를 찾은 펠리컨이 “펠리컨다운” 삶을 찾아 나선다는 해피엔딩의 이야기이다.

꼭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20세기의 미운 오리새끼는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와는 달리 팔자가 늘어졌다. 주인이 잡아온 물고기를 날름 먹어치웠다고 해서, 슈퍼마켓에 지천으로 널린 물고기를 보고 흥분해서 날뛰다가 진열된 상품들을 몽땅 뒤엎어 버렸다고 해서 구박 받는 일도 없다. 마지막 잠깐의 환희를 위해 오랜 역경을 묵묵히 참고 견뎌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펠리컨은 텔레비전 만화에서 익히 보아 왔던, 애절하고, 가련하고, 당장이라도 눈물 뚝뚝 흘릴 듯한, 한마디로 궁상맞은 미운 오리새끼의 표정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뻔뻔스러워 보일 만큼 악동 같은 표정, 괘씸하기 짝이 없는 짓을 저질러 놓고도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제가 한 짓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이런 표정이야말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꼬마라면 누구나 이런 표정을 짓는 데에 명수니까.

끝까지 코믹하고 재미있는 내용에 책 모양새도 퍼즐 같다. 반토막짜리 페이지가 들어가 있어서 그 페이지를 넘기면 그 안에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다. 덩치는 커다래도 장난감만 같다. 이렇게 장난감 같은 책에 아이들에게 색채의 아름다움을 한껏 누리게 해 줄 풍요한 색채가 가득하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칭에 걸맞게 와일드스미스의 붓끝에서 나온 색은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현란하다 싶을 만큼 화려한 색채에 크레파스, 펜, 수채 물감, 여러 가지 재료가 섞여 있는데도 생뚱같거나 조잡하기는커녕,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기막힌 조화를 빚어 내고 있다.

우리 말로는 “사다새”라 한다는 펠리컨은 워낙 방송을 많이 타서 그런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사실 폴의 엄마가 펠리컨이란 것을 알아 내기 전에도 눈썰미 있는 꼬마들은(아니면 제목을 기억하는 영악한 꼬마거나) 이 새가 펠리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 자라면 날개 펼친 길이가 3미터 남짓 된다는 이 커다란 새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서너 해는 족히 걸린다. 시시콜콜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나무 타고 놀기를 좋아하던 꼬마도 그새 친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알 만큼 부쩍 자라 있을 터이다. 이별 이야기는 어쨌든 좀 씁쓸하다. 하지만 단짝 친구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비밀 하나, 뻔뻔스러운 표정이 “엄마”를 쏙 빼 닮은 못난이 새가 등장하는 깜짝 쇼에, 유쾌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지은이: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1930~)

존 버닝햄,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현대 그림책 3대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60년대 이후에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와일드스미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현란하리만치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보는 이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색채와 다양한 형식, 절제되고 리듬감 넘치는 문장이 특징인 그의 그림책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8백만 부가 넘게 팔렸다.
영국 페니스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와일드스미스는, 열여섯 살 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반슬레이 미술 학교를 다녔다. 그 후 옥스퍼드 출판사의 편집자의 눈에 띄어 첫 작품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의 ABC》로 영국 최고의 그림책상인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작품으로는《데이지》,《회전목마》,《서커스》,《다람쥐》,《달님이 본 것은》들이 있다.

역자: 김경미

김경미는 1968년 해남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광주에서 세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어린이책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빨간 머리 앤》, 《에이번리의 앤》, 《펠리컨》, 《개구리 왕자》, 《바람이 불 때에》, 《생쥐 기사 데스페로》, 《사랑하는 밀리》, 《겁쟁이 빌리》 들이 있다.

그린이: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1930~)

존 버닝햄,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현대 그림책 3대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60년대 이후에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와일드스미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현란하리만치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보는 이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색채와 다양한 형식, 절제되고 리듬감 넘치는 문장이 특징인 그의 그림책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8백만 부가 넘게 팔렸다.
영국 페니스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와일드스미스는, 열여섯 살 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반슬레이 미술 학교를 다녔다. 그 후 옥스퍼드 출판사의 편집자의 눈에 띄어 첫 작품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의 ABC》로 영국 최고의 그림책상인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작품으로는《데이지》,《회전목마》,《서커스》,《다람쥐》,《달님이 본 것은》들이 있다.

네버랜드 세계의 걸작 그림책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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