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빵 아이》는 참 색다른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구워 낸 아이 모양의 ‘생강빵’이 갑자기 살아나서는, “나 잡아 봐라!” 하며 놀리듯 달아납니다. (생강빵 아이가 달아나면서 외치는 ‘잡을 테면 잡아 보시지.’라는 대사는 아주 유명해서,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습니다.) 그 뒤를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암소와 말과 농부도 따라서 뜁니다. 모두를 약 올리며 달아나던 생강빵 아이는 강을 건네주겠노라고 나선 여우의 등에 올라탔다가 그만 홀딱, 먹히고 말지요. 필사적으로 달아나지만 결국은 잡아먹히는 생강빵 아이가 참 딱하고 불쌍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대체 어떤 인생의 진리가, 인간성의 숨은 면이, 삶의 날카로운 단면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대답하자면, ‘그런 것은 없다.’일 듯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가 어른을 놀리면서 말 안 듣고 까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교훈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강빵 아이가 먹히기 싫다면서 달아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일까요? ‘나를 잡수세요.’ 하며 얌전히 붙잡혀 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여우는 나쁘다. 여우를 믿지 말자.’일까요? 그렇다면 여우도 억울합니다. 어차피 생강빵은 먹으려고 만든 것이니까요. 남들은 다리를 쓰는 대신 자기는 머리를 썼을 뿐이니까요.

《생강빵 아이》는 《신데렐라》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돼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잭과 콩나무》처럼 비슷한 이야기가 많지도 않습니다. 주로 영미권에서사랑을 받고 있고, 이야기도 단순하고 표면적입니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의 연구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습니다. 그 대신 교육 현장에서는 즐겨 쓰입니다. 간결하면서도 선이 뚜렷한 구조 덕분에 어린아이들도 이야기를 금세 외우고, 여러 가지로 변형도 합니다. 생강빵 아이를 쫓아가는 동물이나 사람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고 다른 캐릭터로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이나 역할극의 소재로는 으뜸입니다.
말하자면 《생강빵 아이》는 어떤 의미나 메시지보다는 즐거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화하고 세련된, 문화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즐거움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아이들(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이 두려워하면서도 매혹되는, 먹고 먹히는 관계입니다. 먹기 위해 뛰고 먹히지 않기 위해 달리는, 이 가장 원초적인 생명 현상의 현장에는 삶의 에너지가 솟구칩니다. 심장 박동과 맥박이 한두 배쯤 빨라지는 흥분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런 역동성이 넘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표현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입이나 머리가 아니라 아직은 ‘몸’인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도 이 소재가 야만적이고 잔인하다는 찜찜한 느낌이 어느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이야기가 얼마나 유희적으로 전개되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앞서 말했듯이 주인공인 생강빵 아이는, 살아 있는 현실적 인물이 아니라 ‘빵’입니다. 빵은 먹는 물건입니다. 오이나 당근, 물고기나 새도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는 하지만, 생명의 순환 고리 안에서 결국 누군가의 먹을거리가 되는 운명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먹히는 일을 너무 감상적으로, 죄의식이나 두려움 안에서 볼 일은 아니지요. 아이 모양으로 빚은 생강빵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은 음식을 보기 좋게 장식하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헐레벌떡 뛰는 추적자가 장면마다 하나씩 늘어나는 누적식 구조도 상당히 유희적인 장치입니다. 누적식 구조로 유명한 《커다란 순무》라는 옛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구조의 즐거움을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강빵 아이가 부르는 노래가 있지요. 공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처럼, 이 노래도 놀이의 반주 역할을 합니다. ‘서라!’, ‘싫어!’, ‘어디 잡을 테면 잡아 보시지!’,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가’처럼 같은 어구가 되풀이되는 것도 유희적인 장치의 하나입니다. 그중 압권은 맨 마지막 구절인 ‘와삭, 와삭, 와사삭!’이지요. 책을 읽어 줄 때나 역할 놀이를 할 때, 이 대목에서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경쾌하게 의성어를 합창하며 한바탕 웃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살육이나 죽음 같은, 삶의 비극적 실존 조건이 찌푸린 얼굴로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그런 실존 조건이 힘찬 에너지와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축제의 한 장이 펼쳐질 뿐입니다. 생강빵 아이가 죽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책을 펼치면, 무대의 막을 올리면, 생강빵 아이는 다시 톡 튀어나와서 메롱거리며 뛰어다닐 테니까요.

김서정 (아동문학 평론가·중앙대학교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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