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네기 상 수상 작가, 필리퍼 피어스가 20년 만에 내놓은 최신작!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로 카네기 상을 수상하고, 리얼리즘 판타지 문학의 선구자로 대표되는 대작가, 필리퍼 피어스. 그녀가 펜을 놓은 지 20년 만에 내놓은 작품 《작은 신사 The Little Gentleman》가 국내에 소개된다. 작가는 오랜 세월 글을 쓰지 않았지만, 녹슬기는커녕 더욱 굳건한 필력으로 판타지의 대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필리퍼 피어스의 판타지 세계는 허무맹랑하지도, 황당무계하지도 않다. 또한 현실계와 4차원 세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요정, 기사, 마법사 들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거대한 대장정의 모험도 없다. 작가는 아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배경 묘사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판타지 세계를 보여 준다. 판타지 동화지만 한 편의 현실 동화를 보는 듯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등장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나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플롯, 풍성한 언어 세계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수많은 판타지 문학 작품들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 영국의 역사적 배경 아래 펼쳐지는 리얼리즘 판타지 문학
“1702년 윌리엄 왕은 말을 타고 가다가 두더지가 만든 흙 두둑에 걸려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작가는 이 짧은 영국의 실제 역사적 사건에 착안하여, 200여 쪽에 달하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결합시킨 ‘판타지 문학’을 탄생시켰다.
어느 날, 벳은 프랭클린 씨의 부탁을 받아 풀밭에서 지렁이에 관한 책을 큰 소리로 읽는다. 곁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터무니없는 행동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 풀 더미에서 작은 두더지 하나가 나타난다. 그것도 인간의 말을 하는 두더지! 두더지는 자신이 1700년에 태어났으며, 먼 옛날 왕족들의 전투와 음모에 휘말려 ‘인간의 말을 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두 가지 마법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벳에게 전설처럼 믿기 어려운 두더지의 과거는 실제 영국사와 맞물려 있다. 윌리엄 왕 대신 제임스 2세와 그 자손을 정통 영국군주로서 지지한 재커바이트, 그로 인한 정치 세력들 간의 음모와 다툼, 컬러든 전투, 흙 두둑에 걸려 말에서 떨어져 죽은 윌리엄 왕 등 이야기를 이끄는 많은 소재들이 영국에서 일어난 사건 그대로이다. 독자들은 평균 수명이 짧은 두더지가, 300년도 더 살아서 흙을 파고 돌아다니다 한 소녀와 만나 인간의 말로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나눈다는 이 이야기가 마치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묘하고도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현실 세계를 바탕에 두고, 생생하고 치밀하고 매력적인 묘사로 판타지를 그려 내는 작가의 큰 능력이 아닐 수 없다!


▶ “나도 널 믿어도 되는 거지, 응, 그렇지?”
- 두더지와 벳에게 배우는 믿음, 우정, 모험, 사랑
벳과 두더지는 "햇살 속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한 친구가 된다. 사실 둘은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벳은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한적한 시골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벳 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가 나타나자, 벳은 지난날의 상처를 ‘두더지’ 앞에 꺼내 놓고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털어놓는다. 두더지도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마법의 순간을 떠올리며 벳에게 모두 들려준다. 서로의 상처를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며 슬퍼하고 보듬어 주는 둘의 진한 우정은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둘은 서로를 신뢰한 덕분에 함께 지하 세계를 구경하는 신나는 모험도 즐긴다. 놀랍고도 기이한 이 모험담은 다채롭고 풍성한 언어로 만든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독자들을 진짜 지하 세계로 이끌며 각별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 “(...) 모든 생명체는 자기 본성에 따라 사는 법이야.”
- 자연의 법칙, 생명의 순환, 인생의 진리 그대로!
《작은 신사》는 작가의 자연관, 인간관, 인생관 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두더지는 ‘생태 동물원’을 만든다는 허울 좋은 구실로 자신을 가둔 채 오로지 연구 대상으로만 삼으려는 ‘프랭클린’을 두고, “심술궂고 비열하다”며 사람들의 잘못된 자연관에 대한 행태를 꼬집는다. 또한 벳과 함께 즐거운 때를 보내고 있지만, 새 가족을 만난 벳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자 “모든 생명체는 자기 본성에 따라 사는 법”이며, “인간과 우정을 쌓는 것은 두더지가 가질 만한 능력이 아니라”며 떠날 것을 결심한다. 작가의 인생관과 자연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는 게 있으면 죽는 것도 있다”는 앨럼 부인의 나지막한 중얼거림도, <작가의 말>에서 필리퍼 피어스가 밝힌 것처럼 영원히 사는 것은 “저주(curse)”라고 한 점도 이와 같다.
말을 할 줄 아는 “축복” 덕분에 두더지는 벳과 깊은 우정을 나누지만, 영원히 사는 “저주”에서 벗어나,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온전한 두더지”로 돌아가길 소망한다. 그러려면 벳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벳은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면 다시는 두더지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벳은 사랑하는 친구에게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두더지를 떠나보낸다. 두더지의 빈 자리는 새로운 가족과 친구가 메운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의 법칙, 생명의 순환, 만남과 이별의 인생사는 80여 년 이상의 세월을 겪어 온 작가(필리퍼 피어스는 1920년에 태어났다)가 인생을 뒤돌아보며 들려주는 메시지로 들린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인생의 진리를 따르는 벳의 진정한 용기에 독자들은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내용 어느 날 프랭클린 씨가 벳에게 풀밭에 나가 지렁이에 관한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한다. 대체 왜? 누가 듣는다고? 하지만 벳은 통나무에 앉아 천천히 큰 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참 책을 읽다 보니 통나무 한쪽 끝에 있는 풀 더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두더지였다. 그것도 말을 하는 두더지. 두더지는 전설처럼 믿기 어려운 과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아주 오래 전, 두더지는 왕족들의 음모와 전투에 휘말린다. 당시 윌리엄 3세는 두더지가 파 놓은 흙 두둑 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죽고, 윌리엄 3세가 죽기만을 기다리던 재커바이트들은 이 소식에 기뻐 날뛰며 “까만 옷을 입은 작은 신사”에게 남몰래 건배를 한다. 그 신사란 왕을 죽음으로 이끈 흙 두둑의 주인인 두더지였던 것. 이 사건에 휩쓸려 두더지는 자신의 꼬리가 잘린 채 ‘영원히 죽지 않고,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두 가지 마법에 걸린다. 두더지는 벳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의 소망은 오직 하나, 마법이 풀려 “온전한 두더지”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벳은 두더지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벳은 두더지 안에 있는 마법의 힘을 발견해 주고, 두더지는 마법을 이용해 벳의 몸을 크게도 작게도 만들고, 마침내 벳의 몸을 아주 작게 만들어 자신의 지하 굴속 세계를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벳은 두더지와 지내는 나날이 즐겁지만, 두더지의 가장 깊은 소망은 여전히 “온전한 두더지”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려면 벳이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벳은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둘의 우정도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두더지의 간절한 바람을 알고 있는 벳은 결국 두더지가 마법에 풀려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두더지를 떠나보내고 며칠 뒤, 벳은 프랭클린 씨의 목초지를 찾아가 두더지와의 지난 추억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