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소녀 샬럿의 삶은 점점 꼬여만 간다. 깐깐한 담임선생님은 샬럿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친구들은 얼빠진 남자 아이들에게 폭 빠지고, 엄마는 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사는 가상의 하녀 ‘로티’를 주인공으로 한 일기를 쓰며 그 속에 현실에서 겪은 일들을 재구성하는 샬럿. 현실과 가상의 일기장을 오가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샬럿과 로티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꼬집을 줄 아는 작가 재클린 윌슨은 독특한 구성 방식으로 꾸며진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톡톡 튀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의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전하고 있다.

▶ 샬럿 vs 로티_ 동 떨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두 소녀의 특별한 이야기

숙제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책을 뒤지다 자기와 똑 닮은 여자 아이 사진을 본 샬럿. 자기 같은 아이도 하녀로 부렸다는 사실에 놀란 샬럿은 그때부터 ‘아이 보는 하녀 로티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겪은 일들을 로티의 일기장 속에 재구성하며 샬럿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우리가 일기를 쓸 때 그러하듯이, 샬럿은 잘했거나 통쾌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다시 한 번 즐거워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 갈 방향에 대해 궁리한다. 엄마가 이혼남 마크 아저씨와 심상치 않은 관계를 이루었을 때도, 자기 때문에 아저씨의 아들 로빈을 잃어버렸을 때도 샬럿은 로티의 입을 빌어 자신의 속마음을 가상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재현해 나간다. 그렇게 가상의 소녀 로티는 샬럿의 가장 특별한 친구이자, 현실에서의 탈출구가 되어 준다.
현실과 빅토리아 시대를 오가며 펼쳐지는 두 소녀의 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편의 이야기를 견주어 보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150년 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12살밖에 안 된 로티가 하녀로 일하며 고된 집안일을 하는 모습,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 부잣집에서 일요일을 보내는 모습 등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 아이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작가, 재클린 윌슨이 전하는 행복한 가정의 소중함

이혼 가정, 편부ㆍ편모 가정, 그리고 부부의 불화로 멍들어 가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재클린 윌슨은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작가로 유명하다.《리지 입은 지퍼 입》,《내 이름은 에이프릴》,《일주일은 엄마네, 일주일은 아빠네》등의 전작들을 통해 이혼 가정이나 재혼 가정의 자녀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묘사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감정과 고민을 실감 나게 그려 냈다.
늘 씩씩한 샬럿도 엄마가 이혼남 마크 아저씨와 묘한 관계를 이루자 덜컥 겁이 난다. 그건 마크 아저씨의 5살짜리 아들 로빈도 마찬가지다. 경쾌한 인물들로 가득한 작품 속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주인공 로빈은 부모의 이혼에서 받은 상처를 낡은 인형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으로 대신하는 마음 약한 꼬마다. 결국 로빈은 ‘이제 아빠가 너를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샬럿의 말에 상처 받고 가출해 버린다.
재클린 윌슨은 샬럿과 로빈의 괴로운 속마음을 발랄하고 간결한 문체로 무겁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아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진지하게 묘사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작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샬럿의 엄마는 둘만의 행복한 가정을 깨기 싫어하는 딸의 마음을 살피고 재혼 생각을 접는다. 우여곡절 끝에 로빈을 되찾은 마크 아저씨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만의 자유 발랄함과 아이들이 여리고 상처 받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함께 이야기하는 작가 재클린 윌슨. 엄마 아빠의 따뜻한 사랑으로 행복을 되찾아가는 샬럿과 로빈의 이야기는 비슷한 가정환경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린 독자들을 달래 줄 뿐만 아니라, 작품을 함께 읽는 부모들에게도 생각할 여운을 남긴다.


▶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꾸려 가는 기분 좋은 성장기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주인공 샬럿이다. 미혼모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샬럿은 자기가 결손 가정 아이라고 떳떳이 말할 정도로 씩씩하다.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 때문에 주위에서 께름칙한 시선을 보내도 절대로 기죽지 않는다. 약간 어수룩하고 마음 약한 엄마를 돌봐 줄 때도 많다. 아빠가 없는 삶과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샬럿의 긍정적인 모습은 작품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준다.
이렇게 꿋꿋한 샬럿이 처음으로 큰 시련을 맞는 모습은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한다. 로빈의 가출 소식을 접한 샬럿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던 샬럿은 처음으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마주하고 괴로워하지만, 엄마의 믿음과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병든 로빈을 간호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되돌리려고 애쓰는 과정을 겪으며 샬럿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자라난다.
읽는 이에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주인공 샬럿 외에도 늘 딸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애쓰는 샬럿의 엄마 조, 깐깐하지만 학생들이 힘들어할 때는 어깨를 빌려줄 줄 아는 워스베크 선생님, 의리 있는 공붓벌레 제이미 등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들이 펼쳐가는 이 이야기는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문체와 어우러져 마지막 장까지 기분 좋은 책 읽기를 경험하게 해 준다.


▶ 여자 아이들의 깜찍한 속마음과 환상의 콤비 닉 샤랫의 삽화

이 작품은 요맘때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생겨 하루 종일 그 얘기만 떠들고, 자기 방과 물건을 가수 사진으로 도배하는 샬럿 친구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소녀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이유도 없이 대드는 사춘기적 심리도 마찬가지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된 여자 아이들만의 생활과 그 속마음은 같은 연령대의 독자층에게 큰 폭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요맘때 여자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궁금한 남자 아이들까지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군데군데 곁들여진 닉 샤랫의 삽화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재클린 윌슨의 모든 작품에 삽화를 그린 환상의 콤비 닉 샤랫은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완벽하게 재현한 그림과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의 핵심만을 유머러스하게 살려 낸 펜 삽화로 이번에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