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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 판매가 15,000원
  • 책정보 무선 304쪽 147*215mm 2012년 02월 24일
  • ISBN_13 978895276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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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 소개]
 
탐정이 지닐 법한 감각으로 그림, 고문서, 소설 속에서 찾아낸
24가지 사라진 직업들에 대한 흥미롭고도 놀라운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역사 속 뜻밖의 직업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가늠해본다!
 
직업은 당대 인간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이다!
이동변소꾼, 개미번데기수집상, 고래수염처리공, 소변세탁부, 커피냄새탐지원, 촛불관리인, 실루엣화가……. 알쏭달쏭 낯선 이 이름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인류가 생계를 이어나가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직업들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사라졌을까?
이 책의 저자 미하엘라 비저와 삽화가 이르멜라 샤우츠는 한때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비운의 직업들을 통해 유럽인들의 사고방식과 취향 그리고 풍습 등을 알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어떤 직업이 어떤 일을 하고 그 종사자들의 솜씨는 어떠했으며 또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를 정확히 포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직업들의 존재 이유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만들었을까? 그 직업들은 사람들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또 그러한 직업 활동을 함으로써 그들은 행복한 삶을 영위했을까? 직업들은 어떠한 이유로 사라져 갔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의 변화와 발전은 직업의 흥망성쇠와 통해 있다!
숯쟁이는 인류 문명을 세우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지만 이제 역사 속에 묻힌 직업이다. 목탄을 얻기 위해 숲을 태워버리기에는 오늘날 숲이 지니는 의미가 커졌기 때문이다. 유랑가수는 노래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으며 소시민들의 집단적 사고를 조장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던 모래장수의 경우에는 고된 노동에 자녀들을 투입함으로써 아이들이 오래 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 직업은 리놀륨 및 단단한 목재를 이용한 바닥이 등장하면서 실내용 모래에 대한 수요가 정체됨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졌다. 고래수염처리공은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면서 직업을 잃었다. 석판인쇄공은 전성기 때 그림을 다루는 솜씨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또 다른 복제 인쇄 기법의 발달로 산업적 활용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ㆍ문화의 변화, 역사의 발전에 따라 직업도 흥망성쇠의 길을 걷게 되었다.

끈기 있는 자료 수집, 생생한 고증, 밀도 있는 내용!
미하엘라 비저와 이르멜라 샤우츠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직업들을 찾느라 2년 동안 동분서주했다. 때로는 책을 읽다가, 때로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단서를 발견하면 곧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관련 기관에 전화를 걸고 고증해 줄 사람들을 만났다. 저자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직업들에 흠뻑 빠져 있었다. 덕분에 이 책에 실려 있는 직업들은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 심지어는 고대 이집트와 그 이전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많은 직업들이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이어져 온 것들이다. 그들은 최대한 수많은 기록과 책들을 뒤져 해당하는 인용문을 확인하고 당시의 복식이나 그림 자료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는 특정한 시대의 느낌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시의 원문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덕분에 이 책에는 수많은 인용문과 옛날 동판화, 당시의 그림 자료들이 실려 있다.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특정한 직업들이 한층 선명하게 구체화되어 있다.
 
직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직업이란 예나 지금이나 일차적으로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밥벌이 수단이다. 이때 가족은 흔히 생계를 책임진 사람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일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은 극소수의 직업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업인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고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긍지를 가졌다.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오늘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청년 실업, 백수, 삼포 세대,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생겨나고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하루가 멀다 하고 듣도 보도 못한 직업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 속에서 갖는 직업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의 일상사를 통해 현 사회, 경제, 문화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소개된 사라진 직업들|
이동변소꾼|만능식도락가|개미번데기수집상|유모|유랑가수|고래수염처리공|오줌세탁부|커피냄새탐지원|터키인시종, 궁정흑인, 섬인디언|숯쟁이|촛불관리인|석판인쇄공|넝마주이|대리석구슬제조공|‘로사리오의 묵주’제조공ㆍ호박세공인|무면허의사|지하관우편배달부|말장수|모래장수|사형집행인|가마꾼|실루엣화가|순회설교자|양봉가

저자소개

지은이: 미하엘라 비저


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16살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잠시 있다가 곧 독일로 돌아와 인터내셔널 스쿨을 다녔다. 졸업 후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일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대학 시절 일본에서 승려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처와 함께 차 한 잔: 일본 절에서 보낸 1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6년 동안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돌아와 현재는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직업들에 대한 자료가 담긴 그림, 고문서, 소설 등을 발견하고는 삽화가 이르멜라 샤우츠와 함께 2년간 도서관, 인터뷰, 현장 검증을 통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지금은 역사소설을 구상 중에 있다.


역자: 권세훈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6년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는 《잘못 들어선 길에서》, 《혁명의 역사》, 《부엌의 철학》, 《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등 20여 권이 있다.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에 근무하며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린이: 이르멜라 샤우츠


뮌스터와 슈투트가르트의 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그래픽, 무대장치 및 무대의상을 전공했다. 이러한 예술가적 경험을 그림에 반영하여 개성 있는 삽화로 탄생시켰다. 현재 베를린에 살고 있다.


목차

옮긴이의 말
머리말
 
01|이동변소꾼
02|만능식도락가
03|개미번데기수집상
04|유모
05|유랑가수
06|고래수염처리공
07|오줌세탁부
08|커피냄새탐지원
09|터키인시종, 궁정흑인, 섬인디언
10|숯쟁이
11|촛불관리인
12|석판인쇄공
13|넝마주이
14|대리석구슬제조공
15|‘로사리오의 묵주’제조공·호박세공인
16|무면허의사
17|지하관우편배달부
18|말장수
19|모래장수
20|사형집행인
21|가마꾼
22|실루엣화가
23|순회설교자
24|양봉가

책속으로

공작 부인의 편지 내용보다 더 놀라운 것은 짐작컨대 퐁텐블로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랬다. 심지어 사치스러운 베르사유 궁전에도 그러한 공간은 없었다. 그저 고급스럽게 치장한 요강에 앉아 용변을 보면 하인들이 치웠다. 구석진 곳에서 비단을 이용하기도 했다. 17세기를 통틀어 상류층에서도 이러한 관습을 불쾌하게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 상태에서 접견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경우 함께 요강에 앉아 용변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19p 이동변소꾼 중에서
 
개미번데기수집상은 1920년대에 미장이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하루에 5킬로그램의 알을 모을 수 있었다. 약 40년 뒤에는 여름에 번데기를 수집해 판매한 돈으로 텔레비전 한 대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산림국은 개미 번데기 수집을 금지하거나 제한했지만 1970년대까지 오스트리아 특정 지역의 주민들은 개미 번데기로 용돈을 벌기 위해 여름을 비워놓았다. 오스트리아 동북부의 몇몇 지역에는 심지어 개미번데기수집상을 위한 전문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 한구석에 새겨놓은 문구가 아직도 남아 있다. -44p 개미번데기수집상 중에서
 
인간이 고래를 절멸시킨 것이 아니라 고래수염에 대한 갈망이 인류를 절멸시킬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녀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성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여자에게 어떻게 가까이 다가갈까?” 대신에 “여자의 옷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코르셋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적 상상의 기본 목록에 포함되었다. 고래수염에 대한 수요와 관련하여 인간은 특유의 독창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해결 방법을 모색했다. 1856년 패션 잡지인《데어 바자르》에 또 다른 흥미로운 방법이 소개되었다.
"프레벨의 공기 스커트는 공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고무호스를 버팀대로 사용한다. 이러한 고무 틀 덕분에 공기를 쉽게 불어 넣을 수 있어서 천식이 있는 여성을 포함하여 누구나 충분히 스커트에 공기를 넣을 수가 있다."
이러한 발명이 고래수염처리공이라는 직업의 종말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그 원인은 유행 자체에 있었다. 광란의 1920년대, 그리고 여성 해방운동과 더불어 후프 스커트가 평상복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포경 산업도 퇴조했다. 오늘날의 여성도 코르셋을 입지만 고래수염 대신에 철제 띠가 사용되고 있다. -79-80p 고래수염처리공 중에서
 
고대 로마에서는 깨끗한 외모를 높이 평가했다. 남의 이목을 끄는 로마인을 ‘잘 씻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고위 관리의 하얀색 토가는 바로 그 계급의 자칭 순수한 성격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청결함이 오줌 세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사실은 미묘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인들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베풀었던 오줌세탁부들은 그 때문에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희화화되었다. 수많은 풍자시에 그들의 직능조합이 등장했다. 한 고대 로마 연구가의 말에 따르면 로마의 엘리트들은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조롱했다. 오줌세탁부의 후손인 키케로는 오줌세탁부가 옷을 처리할 때처럼 자신의 윗사람들을 두들겨 팼다고 한다. -89p 오줌세탁부 중에서
 
8세기까지는 광석이 발견된 곳에서 숯을 만들었다. 하지만 숲은 금방 사라졌다. 그래서 숯을 더 이상 채광용 움막 옆에서 만들지 않고 숯 만드는 곳으로 광석을 가져갔다. ‘제철소(Eisenhütte)’라는 단어에는 ‘움막(Hütte)’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광석은 고정된 건물에서가 아니라 숲에 인접한 이동식 가건물에서 제련되었다. 숯쟁이들도 벌채용 목재를 얻으려면 움막과 함께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숯 생산의 역사는 자연 약탈의 역사이기도 하다. 16세기에 이탈리아의 비링구치오는 숯을 얻는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그렇게 엄청난 숲이 인간의 마음먹기에 따라 다 없어져버릴 정도로 이용되고 자연이 날마다 그 숲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127p 숯쟁이 중에서
 
17세기부터 넝마 밀수가 증가했다.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책에 목말랐던 유럽은 종이에 탐을 내기 시작했다. 그 원료인 넝마는 파괴력이 큰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국경 너머로 반출되지 않았다. 바이마르공화국에서는 슈판다우 교외인 베를린에 유럽 최대의 넝마 거래소가 생겨났다. 유대계 기업들이 중심이 된 이 거래소에서 220종에 이르는 ‘고유의 다채로운 넝마들’이 교환되어 유럽 전역으로 건너갔다. 심지어는 넝마만을 다룬 독자적인 잡지 《원료생산업》이 발간되기도 했다. -157p 넝마주의 중에서
 
실습과 이론을 결합시킨 의학 교육의 개혁과 약사 양성을 위한 탁월한 교육을 통해 무면허의사의 활동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다. 무면허의사는 여전히 여기저기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사이 무엇보다도 인터넷을 통한 통신판매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따라서 무면허의사는 설 곳을 잃었다. 정말 그럴까? -198p 무면허의사 중에서
 
합성세제와 리놀륨 및 단단한 목재를 이용한 바닥이 등장하면서 실내용 모래에 대한 수요도 정체되었으며 모래장수라는 직업도 점차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모래장수가 저녁마다 아이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으는 멋진 남자로 알려진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모래장수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에 약간 괴기스러웠다. 에른스트 호프만이 모래장수를 폐결핵에 걸리고 눈마저 붉게 충혈된 채 아이들의 눈을 찔러 도려내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밤에 눈을 비비면 사악한 모래장수 때문이라고 했다. 민중의 괴로움에 마음을 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그 이야기를 좋은 내용으로 바꾸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모래장수는 밤에 아이들에게 달콤한 우유를 주며 눈에 적시도록 한다. 그 뒤로는 꿈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모래를 뿌리는 모래장수 이야기를 더 이상 접할 수 없었다. 나중에 모래장수는 구 동독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그는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트였다. -230-231p 모래장수 중에서
 
괴테 자신도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실루엣을 수집했다. 이 시기에 어느 집을 방문하면 내기를 해서 상대편의 옆모습을 그려주었다. 사람들은 괴테에게 다른 사람들의 옆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즐겨 물어보았다. -258p 실루엣화가 중에서
사라진 많은 직업 중에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그 배후의 인간이 자신의 활동 때문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자신의 일이나 직업적 상황 때문에 비난받지 않는 느낌을 받는 직업이 별로 많지 않다. 그 소수의 직업들 가운데 하나가 양봉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양봉가는 숲에서 야생 꿀벌을 지키고 그 산물인 꿀과 밀랍을 가공하여 판매한 직업군이었다. 그들의 일은 변화가 많았으며 수공업과 상품화를 결합시켰고 안과 밖에서 한 번은 위 나뭇가지에서 높이 공중을 떠다니고, 또 한 번은 숲 속 바닥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기도 했지만 항상 달콤했다. -280p 양봉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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